수면의 중요성이 날로 부각되고 있다. 하지만 자고 싶어도 잘 수 없는 게 바쁘게 사는 현대인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도 수면 시간이 짧기로 유명하다. 그만큼 낮에 쪽잠을 자는 이들이 적지 않다. 전문가들은 건강에 도움이 되는 쪽잠은 따로 있다고 말한다.

쪽잠… 어떤 사람에게 필요할까?

쪽잠이 필요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두 가지를 가르는 기준은 본인이 느끼는 ‘수면 부족’증상이라 할 수 있다. 사람마다 필요한 수면 시간이 다르듯, 피로도 역시 다르기 때문이다.
경희대학교 동서신의학병원 신경과 신원철 교수는 “개인에게 필요한 수면 시간은 낮에 졸리지 않은 상태에서 활동할 수 있는 정도”라며, “깨어 있어야 할 시간에 자주조는 주간졸림을 겪고 있다면 수면 부족을 의심할 수 있다”고 조언한다.
주간졸림은 학습이나 작업의 능률을 떨어뜨리고 실수에도 영향을 미치는데, 수면 부족이 장기화되면 질병에 걸릴 확률까지 높아진다. 수면 시간이 하루 6시간 이내라면 고혈압 발생 가능성이 2배 더 높고, 하루 5시간 이내라면 당뇨병 발생 가능성이 3배 가까이 높아진다는 보도도 이를 뒷받침하는 연구 결과다. 최근에는 하루 7시간 자는 사람에 비해 하루 3.5~4.5시간 자는 사람들의 사망률이 15퍼센트나 높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되어 수면 시간의 중요성을 실감케 하고 있다.
이런 면에서 낮 시간을 활용한 쪽잠은 수면 부족에 따른 피로를 풀어주는 데 용이하다. 서울수면클리닉의 이지현 원장은 “아침 일찍 일어나야 하고 잠이 부족하다면 30분 이내의 낮잠이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밝힌다. 실제 20~30분 낮잠을 잔 고교생이 성적 향상에 도움을 받았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될 만큼 쪽잠은 여러모로 좋다. 단 야간 수면에 영향을 주지 않는 정도여야 한다는 게 전문의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주부·회사원·학생 케이스별 쪽잠의 기술

자, 그렇다면 주변 사람들이 즐기는 쪽잠의 ‘질’은 어떨까? 오전과 점심식사 직후, 초저녁 시간을 활용해 각기 쪽잠을 즐기는 주부와 남편, 아이의 쪽잠의 상태를 체크해본다. 각각 문제점은 없는지 이지현 원장에게 도움말을 청해봤다.

case 1 오전
쪽잠 자는 주부 → 지연성 수면위상 증후군 우려
새벽부터 일어나 남편과 아이들 아침밥 해 먹이고 모두 회사로, 학교로 간 뒤 오전 시간을 이용해 쪽잠을 즐기는 주부들이 많다. 잠시 소파에 누워 아침 드라마를 보다가 쪽잠에 빠지는 것. 이지현 원장은 이른 시간 알람에 맞춰 일어난 뒤 다시 편안한 시간에 잠이 드는 경우,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지연성 수면위상 증후군(DSPS)’가 유발되기 쉽다고 지적한다. 하루 이틀 정도는 부족한 잠을 보충할 수 있지만, 오전 취침으로 생체 시계가 지연되어 밤늦게까지 잠이 오지 않을 수 있다는 것. 낮잠 시간은 정오에서 오후 4시 사이가 가장 적당하다.

case 2 점심식사 직후
쪽잠 자는 남편 → 생체 주기에 맞는 행동
전날 과음이나 부족한 수면 시간으로 점심시간에 쪽잠을 자는 회사원도 적지 않다. 연세SK병원 척추관절센터가 남녀 직장인 161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 한 결과에 따르면, 직장에서 쪽잠을 즐기는 경우가 총 121명으로 80퍼센트에 육박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밤사이 부족한 수면을 점심시간을 이용해 채우는 것.
이지현 원장은 이러한 직장인들의 쪽잠은 수면과 각성으로 이어지는 생체 주기에 맞는 행동으로, 특히 회사라는 상황이 긴 낮잠을 잘 수 없게 해 수면 의학의 관점에서도 그리 나쁜 습관이 아니라는 의견을 밝혔다.

case 3 초저녁
쪽잠 자는 아이 → 청소년 중 지연성 수면위상 증후군 10퍼센트
초저녁 쪽잠은 생리적 수면과 각성 주기를 해치는 대표적인 예다. 새벽까지 공부하기 위해 초저녁 쪽잠을 청하는 아이의 경우, 지연성 수면위상 증후군에 노출될 위험성도 높아진다는 지적이다.
실제 학원이나 학교에서 밤늦게 귀가해 공부나 컴퓨터 등을 하느라 새벽까지 잠 못 드는 우리나라 청소년의 경우, 무려 10퍼센트가 지연성 수면위상 증후군을 앓는다고. 지연성 수면위상 증후군을 앓으면 아침에 일어나기 힘든 것은 물론, 등교 후 오전 시간에 책상에 엎드려 자는 경우도 있다.
초저녁보다는 점심시간 이후에 짧게 쪽잠을 청하거나, 저녁에 최대한 일찍 귀가해 수면 시간을 확보하는 게 기억력이나 집중력 향상에 도움이 된다.

건강에 도움 되는 쪽잠의 기본 원칙

쪽잠을 즐기기 전에 반드시 명심해야 할 게 있다. 낮잠이 만성적인 수면 부족을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신원철 교수는 “저녁식사 전에 과자나 간식을 먹으면 입맛이 떨어져 식사량이 줄듯, 과도한 낮잠은 두통을 유발하거나 당일 야간 수면의 질을 떨어뜨릴 수 있다”고 조언한다. 그렇다면 건강에 도움이 되는 쪽잠의 기술은 뭘까?
첫째, 정오~오후 4시에 자야 한다. 이른 저녁의 쪽잠은 야간 수면을 방해할 수 있으므로 반드시 피한다. 잠자는 시간이 너무 늦지 않도록 신경 쓴다.
둘째, 쪽잠 시간은 20분 이내여야 한다. 짧은 낮잠은 피로와 신경의 흥분 상태를 막아줘 생체리듬을 정상화하는 데 도움이 된다.
셋째, 책상에 엎드린 자세는 피한다. 회사원이나 학생은 책상에 엎드려 쪽잠을 청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척추에 무리를 줘 오히려 몸이 뻐근해지기 쉽다. 턱을 손으로 괴고 자는 자세도 척추에 부담을 주기 쉬우므로 주의할 것. 되도록 목과 머리 받침대가 있는 의자에 편히 기대 잠을 청한다. 꼭 엎드려 자야 한다면 허리가 굽어지는 각도를 최대한 줄일 수 있도록 책상 위에 쿠션을 받치는 것도 잊지 말자.
끝으로 만성 불면증을 앓는다면 쪽잠이 불면증을 악화할 수 있으므로 피한다.

Mini Interview 나이에 따라 적정 수면 시간도 달라져

과연 내게 필요한 수면 시간은 어느 정도일까? 적정 수면 시간은 개인차가 커 어떤 이는 짧은 수면 시간으로도 문제가 없지만, 어떤 이는 긴 수면 시간에도 피곤함을 호소할 수 있다.
하루 4시간 이내로 자도 일상생활을 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는 ‘short sleeper’와 하루 10시간 이상 잠을 자야 일상생활을 하는 데 지장이 없는 ‘long sleeper’가 전체 인구의 1~2퍼센트에 머문다는 통계도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대부분 7~8시간 자야한다는 게 경희대학교 동서신의학병원 신경과 신원철 교수의 말이다. 그는 “사람에게 필요한 수면 시간은 개인마다 다르고, 나이에 따라 변한다”며, “밤사이 성장호르몬이 분비되는 어린이와 청소년은 평균 9~10시간 자야 한다”고 강조한다. 어른이 되어서는 최소 7~8시간 자는 게 건강에 이롭다.